베트남 현지 회사에서 일할 당시 친하게 지내던 베트남 직장 동료가 팸플릿을 한 가득 들고 찾아왔다. 서울 여행에 관련된 팸플릿이었다. 한국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필자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베트남 동료가 짠 여행 계획은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관광 일정과 큰 차이가 있었다. 다른 일정을 포기하더라도 꼭 남이섬을 가야 했다. 한강공원에서의 '치맥'(치킨+맥주) 일정과 '이태원 클라스'에 나온 술집거리를 가고 싶어 했다. 그가 말하는 곳 대부분이 관광 팸플릿에 없는 곳이었다.
어느 나라를 가고 싶다고 느낄 때 보통 영화나 SNS(소셜네트워크), 책 등 간접적인 정보를 통해서 접하게 된다.
그곳에 간 적은 없지만 이런 분위기와 느낌이 나지 않을까 상상하는 것이다. 일종의 판타지에서 여행 욕구가 피어나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이나 프랑스 파리의 느낌을 이야기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다양한 매체로부터 경험한 상상 이미지이다.
또한 TV에서 늘상 방영되는 여행 예능이나 인스타그램의 멋진 여행 사진들은 당장이라도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게끔 나를 유혹한다.
이같은 이미지에 취해 정작 가보면 상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다른 경우에 실망한 경험이 한 번쯤 있기 마련이다. 베트남에서 느낀 '한류'도 이와 비슷했다.
한국을 가보지 못한 사람이 한국을 떠올리게 될 때 드라마, 영화, 음악에서 만난 이미지를 토대로 상상하고 여행계획을 짜게 된다. 필자 역시도 베트남 곳곳에서 한류 판타지의 이미지를 만날 수 있었다. 몇몇 현지화 사례를 보며 베트남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을 살펴본다.
■ 서울 스트릿, 한국에 없는 한국...베트남서 한류 판타지가 잘팔리네
호치민 2군 타오디엔 지역인 헴 칠(Hem Chill)에, '서울 스트릿'이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서울 야경을 모티브로 식당 전체가 마치 서울 밤거리를 걷는 기분을 선사한다. 2층에 올라서면 밤거리 사이를 내려다보며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 눈에는 서울의 야경이라기보다는 홍콩과 여러 대도시의 이미지를 짜집기한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국을 소비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본다면 이게 무슨 한국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하겠지만 베트남이 상상하는 서울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 음식도 아닌 퓨전 음식을 팔고 있는데 심지어 한식에 필수인 소주마저도 팔지 않는다. 이곳에 진짜 한국은 없지만 판타지 속 한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베트남 젊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호치민 3군 브로스 BBQ 도 베트남 한류 판타지를 잘 공략한 사례다. 한국 식당임에도 손님들 대부분 베트남 사람들이었다. 하노이에 진로 BBQ도 운영하고 있다. 다른 한국 식당과 차별화된 점이 여럿 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베트남 사람들에게 친숙한 저렴한 무한리필 방식과 한국 레트로 느낌의 인테리어와 당시 최고 인기 드라마였던 '이태원 클래스'에 나올 법한 포차 분위기, TV에서 계속 나오는 한국 드라마, 마지막으로 남산 자물쇠를 문 앞에 걸 수 있는 포토존이었다.
이같은 요소들이 어울리며 비록 일개 식당일 뿐이지만 짧은 한국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입소문이 나며 베트남 사람들로 가득했다. 직접 방문했을 때도 우리 팀을 제외하고 전부 베트남 사람 들고 가득 찼다. 심지어 점심 때도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베트남 현지화 전략과 함께 한류 판타지를 제대로 충족시켜준 케이스라 생각한다.
■ 베트남 현지화 사례...늘어나는 한국 컨셉 카페 "계란과 식혜가 거기서 왜 나와?"
베트남 다낭과 후에에는 한옥 스타일의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 마치 북촌에 온 듯한 한옥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카페 구석구석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사진 스폿들도 잘 만들어 놓았다.
베트남에서 인기 있는 세로 레터링 디자인도 한글로 해놓았다. 주로 베트남에서 힙하다고 여겨지는 카페들은 깔끔한 일본풍 컨셉 카페들이었지만 최근 급격히 한국 컨셉 카페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카페의 경우 베트남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을 통한 입소문이 가장 중요하다. 입소문의 중심에는 한국 컨셉 카페들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엉성한 번역이 안된 문구가 눈에 띄었다.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부쩍 든다. 베트남에서 생각하는 한국의 이미지는 이런 느낌이구나.
이곳의 가장 큰 백미는 바로 계란과 식혜다. 한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찜질방인데, 호치민 1군에 베트남에서 가장 큰 한국 찜질방이 있다. 모두 이곳에서 양머리 수건을 머리에 쓰고 계랸을 까먹으며 식혜를 마시는 모습을 찍고 싶어 한다.
한옥 카페에서도 이러한 니즈를 반영하여 식혜, 계란 메뉴를 넣었다. 카페에서 양머리 수건을 머리에 쓰고 식혜를 마시며 사진을 찍는 베트남 커플들이 여럿 보였다.
한옥 카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치민 푸년군에 지하철 컨셉 카페가 생겨 화제가 되었다. 신문에서도 주목할 정도였는데, 단순 카페가 아닌 서울 지하철 안에 들어온 기분이 드는 컨셉 카페였다.
베트남은 최근 하노이와 호치민에 지하철이 개통했지만 한국적인 컨셉은 지하철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카페 안에 한 공간을 지하철 컨셉 사진만 찍을 수 있게 마련되어 있었다. 지하철역은 대성리와 상천역 사이 청평역인데 경춘선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한 정거장 더 가면 가평역 남이섬과 가깝다. 베트남의 남이섬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 베트남에서 만난 한류...별에서 온 그대-방탄소년단-런닝맨 등 한류콘텐츠 열광 체감
TV드라마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대박 흥행으로 넷플릭스 전세계 1위 돌풍은 현재 '지금, 우리 학교'가 바통을 이어받아 전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전부터 '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 '이태원 클라스' 등등 꾸준히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1위를 차지했다. 1년에도 수 많은 한국 영화가 베트남 영화로 리메이크된다. 2020년에 '완벽한 타인'을 리메이크 한 '블러디 문 페스트'가 역대 관객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베트남 생활하며 만난 동료들과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런닝맨' 예능이나 한국 드라마에 익숙했다. 송중기와 이민호를 좋아했고, 티아라와 BTS(방탄소년단)에 열광했다. 바야흐로 한류 콘텐츠 시대가 체감되었다.
필자의 베트남 동료가 꿈꿨던 한국 여행은 비자 발급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한국 사람이 베트남에 가듯 무비자로 갈 수는 없는 일이고, 여러 가지 증명과 제약들이 따라온 것이다. 비자도 한 달 넘게 준비해서야 겨우 발급받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베트남 현지에서 만난 대부분의 지인들과 친구들은 한류에 열광하지만 정작 한국을 방문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다. 그들만의 한국을 상상하며 베트남에서의 한류를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베트남을 찾아 오는 한국분들께 항상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하며 히딩크에 열광할 때 '메이드 인 네덜란드'라고 모두 좋아하고 제품을 구입했는가 물어본다. 박항서와 한류 콘텐츠가 흥행한다고 해서 당연하게도 '메이드 인 코리아'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한류를 좋아한다고 하여 한국의 모든 것을 좋아하고 소비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의 시선에서 이런 걸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지레짐작하면 안 된다.
오히려 베트남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 이외에 철저히 무관심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동남아에 진출하고자 하는 분들께서는 한국을 가보지 못한 베트남 사람들의 시선에서 한국 판타지가 가진 니즈를 잘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유영준 기자 yyj81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