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정계의 '태풍의 핵' 마하티르가 지난달 26일 퇴진했다. 이 때만해도 안와르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문제가 초점이었다.
하지만 94세 노정객 마하티르는 욕심을 거두지 않았다. 퇴진은 안와르 이양을 거부하고 다시 집권을 위한 '꼼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여기서 드라마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국왕은 29일 마하티르도 아니고 안와르도 아닌 무히딘 야신(72)을 신임 총리을 임명했다.
마하티르 재신임을 위한 '신의 한수'인 사임 카드가 거센 역풍에 직면했고, 되레 그를 권력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촉매제가 되었다. 마하티르도 큰 충격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정국에 대해 관전자들마저 딱 부러지게 전망하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정상적인 야신의 임명절차를 미뤄지고 있다.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어떤 역사 대하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말레이시아의 2020 정치위기 들여다보기'를 시리즈로 준비해보았다. <편집자주>
1.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말레이 정치
만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쯤 동남아시아의 이목은 마땅히 말레이시아의 복잡한 정국과 마하티르의 퇴진에 초점이 모아졌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사태이고 말레이시아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큰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복잡다단한 정국을 외국인 입장에서 이해하기란 결코 간단치 않다.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군의 성격은 물론이고 10개가 넘는 정당이름이 생소한 것이 첫째 이유라면, 정치 이면에 깔린 역사와 문화가 한국과 비교가 힘들 정도로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의 영역은 자신이 서 있는 정파적 입장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일본 자민당의 아베 총리가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지만, 일본 유권자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10년째 꾸준히 그를 총리로 선택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앞으로 이어질 설명도 일종의 편견으로 가득찬 해석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 글은 주로 싱가포르의 언론을 참고했음도 알려드린다. 싱가포르가 자국의 정치해설은 잘못하는 편이지만, 한때나마 말레이시아 연방 소속이었고 인접국인 탓이 이 주제에 대해서는 가장 발빠르고 객관적인 보도로 유명하다.
어찌보면 이웃 국가의 정치행태를 꼬집는 것으로 본인들의 정치욕구를 푼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도 한창 물밑 작업이 진행중이고 언제든 새로운 연립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기에 복잡한 얘기는 빼고 큰 줄기를 중심으로 설명해보기로 하자.
2. 94세 노정객의 제2차 퇴장
2월 26일 마하티르는 공중파 TV연설을 통해 자신의 퇴임소식을 발표했다. 당시 퇴임의 변은 구체적인 정치상황을 묘사하기보다는 자신의 진심을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성격이 짙었다.
"내가 퇴임하는 이유는 권력과 지위가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총리의 권력이란 목표를 이루는 수단이었고, 그 목표는 국가의 번영이었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어느 정파가 집권하는 지에만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는 사임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의 전격적인 퇴진 의사는 24일 오전에 이미 이뤄졌다. 그 즉시 말레이시아의 국왕을 만나서 정국을 논의하고, 혼란한 정국을 이끌 과도(interim) 총리로 임명이 된다. 그리고 그 퇴진발표가 있기 하루 전인 23일 오전, 쿠알라룸푸르의 쉐라톤 호텔에서는 구여당인 암노(UMNO) 출신의 정치인 여야의원 수명이 비밀리에 모여 새로운 연립여당의 창설을 위한 모의가 착착 진행 중이었다. 2018년 총선결과를 뒤집는 말레이계의 반란에, 노정객 마하티르가 ‘사표’라는 최강의 수로 대응한 셈이었다.
아마도 마하티르는 국왕의 상징적인 힘을 이용해 왕실은 물론 국민의 재심임을 받을 요량이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해석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국왕은 여느 입헌군주국가처럼 총리를 임명하는 최종적인 헌법기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말레이 국왕은 5년에 한번씩 교체가 되기에 정치적 존재감이 적고, 영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상황에선 현실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펼쳐진다.
마하티르를 임시총리로 임명한 지 불과 5일 뒤인 29일, 국왕은 마하티르와 같은 당 소속인 무히딘 야신(72)을 신임총리로 선택하는 깜짝 발표를 하게 된 것. 마하티르도 이 결정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마하티르가 당초 구상했던 임시총리의 위치에서 코로나 방역작업과 차기총리인선 작업이 무산되었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배수진이던 총리사임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이는 국왕을 위시한 말레이계 파벌의 역공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결정을 위해 국왕은 5일간 하원의원 222명을 모두 접촉해 후임 총리에 대한 의견을 듣을 뒤, 마하티르에 대한 재신임이 아닌 마하티르와 같은 당 소속인 내무부장관인 무히딘 야신으로 뜻을 굳히게 된다는 얘기다.
곧이어 3월 1일, 야신 내각이 출범하고 즉각 코로나 사태에 국경폐쇄 등의 공격적인 대응하게 되면서 말레이시아 정국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사태가 ‘정치위기’로 불리는 이유는, 지난 2년 가까이 마하티르와 안와르를 뒷받침하던 연립여당이 2월 말 해체가 된 것도 있지만, 과연 새로운 총리가 주도하는 새로운 연립여당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정상적 절차는, 연립여당이 먼저 수립되고 이를 토대로 총리가 지명되고 국왕의 추인이 있어야 하는데 상황이 완전히 반대로 뒤집힌 것. 아직은 무히딘 야신의 내각이 국회의 정상적인 인준을 받은 것은 아니고 그 결정이 잠시 바이러스 사태 뒤로 미뤄진 것이다. 국왕의 뜻을 뒤집는 결정이 나와도 문제고, 그대로 따라가도 말레이시아 정치사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는 해괴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3. 마하티르의 지난 2년은 어땠나?
수십년간 장기 집권을 한 내각책임제 국가가 정권이 바뀌게 되면 그 여진은 수년간, 길게는 십수년도 지속된다. 가까운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로 1993년 1차 자민당이 붕괴한 이후 다시 자민당이 집권하기까지 십년 가까이 혼란이 지속됐다. 대통령제와 달리 국회의원의 과반수를 확보한 연립내각만 만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의 하원은 222명으로 임기는 5년이다. 113명만 뜻을 모으면 총리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게 현실이다.
2020년 현재 진행중인 말레이시아 정국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가지 역사적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
첫번째는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벌어진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이념 대결이고, 두 번째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재임했던 라작 총리의 역대 최악의 부패 스캔들, 마지막으로 1958년 말레이시아 독립과 함께 벌어진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인종갈등에 대한 얘기다. 이 세가지 대결구도가 말레이시아 정국을 복잡하게 휘감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듯, 2018년 5월 마하티르 총리는 92세의 나이에 세계최고령 총리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함께 16년 만에 정국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1981년에 제 4대 총리에 취임해 2003년 퇴임할때까지 무려 22년간 장기집권하며 현대 말레이시아 경제의 기틀을 다진 최장수 총리는 다시 한번 자신의 비전을 재가동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당시 마하티르에게 주어진 숙제는 대략 3가지였다. 첫째는 전임 부패정권의 구악을 단죄하고 청소하는 것. 둘째는 무너진 나라경제의 비전을 재정립하는 것. 세째는, 안와르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것 등이었다.
실제 마하티르는 과감했고 집요했다. 우선 자신의 집권 시절 비약하던 말레이시아 경제를 몰락시킨 구정권의 나집 라작 총리를 비롯한 구악들을 재판대에 세우는 일이었다. 역사상 최대의 금융범죄로 일컫는 1MDB 사건이 재판대에 오르고, 구정권의 윤리적 해태의 상징인 2007년의 몽골모델 폭사(爆死) 사건도 재판대에 올랐다. 2019년에는 진보적인 여성판사 텡쿠 마이문(61)을 대법원장으로 세우기도 했다.
무너진 나라 경제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1980~1990년대 자신이 입안했던 말레이 경제정책의 핵심이던 '자동차 제조강국'이라는 비전도 다시 등장했다. 이웃한 라이벌 싱가포르와의 불평등한 경계관계에도 전면적인 재조정이 시작됐다. 싱가포르에 헐값에 퍼주던 식수원에 대한 가격 재조정 논의도 시작됐고 쿠알라룸푸르에서서 싱가포르로 연결되는 초고속 열차 프로젝트도 잠정 연기됐다. 싱가포르로의 지나친 연결성은 물류국가 비전을 가진 말레이시아의 미래가치를 훼손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과거 자신의 진정한 후계자로 알려진 안와르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숙제가 남았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마하티르는 쉽게 결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의욕에 앞서 자신의 시대가 이미 흘러갔다는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일까?
마하티르는 왜 주저했을까?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