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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緬甸 통신<10> 미얀마 코로나 후폭풍...섬유-봉제 '위기'

글로벌 경기침체가 미얀마에 끼치는 막대한 피해...주력 산업 봉제와 섬유 흔들

지난 3월 18일 한국의 공군수송기 C-130J 두 대가 미얀마 양곤 공항에 긴급 도착한 일이 있다. 이는 바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을 위한 수술용 가운 8만 벌을 급히 한국으로 전달하기 위한 운항이었다. 이 수술용 가운은 곧바로 전국 의료시설에 전달되어 의료진과 환자를 살리기 위한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여기서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질 대목은 "어째서 미얀마에서 수술용 가운을 공수해 왔을까?"하는 점일 것이다.

 

답은 아주 간단한데, 미얀마의 주력 산업이 바로 봉제와 섬유산업이라는 점이고,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관련 업체만 100여개가 넘고 고용한 인원도 2만 명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미얀마에 위치한 한국계 공장에서 수술가운이 만들어졌고 이를 한국의 공군을 통해 긴급 수송한 것이다.

 

한국과 미얀마의 봉제산업의 역사는 1990년대 대우와 세계물산이 처음 진출한 이래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전세계 봉제산업이 미얀마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방글라데시-미얀마-캄보디아-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남아시아의 봉제-섬유 산업 벨트는 한국은 물론 전세계의 섬유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형편이다.

 

 

1. 봉제산업, 저개발 미얀마의 가장 핵심 산업

 

천연가스와 목재 보석류 등의 천연자원 이외에 별다른 산업제품 발달이 미약한 미얀마에서 ‘섬유’ 관련 산업은 한국의 1960년대 상황처럼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절박한 산업임에 틀림없다. 현재 전세계 600여 개의 기업이 미얀마에서 봉제 및 섬유가공 공장을 운영중으로, 이들이 고용한 20만 명이 넘는 임금노동자는 미얀마 경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섬유 및 봉제산업은 가장 대표적인 전세계적인 사양산업이다. 제조공정이 비교적 단순하고 노동력의 의존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디자인과 판매는 전세계에서 이뤄지지만 제조만큼은 전세계에서 가장 인건비가 싼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즉, 봉제공장이 많다는 얘기는 해당 국가의 노동숙련도가 낮고, 인건비가 싸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

 

미얀마의 인건비는 전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2019년도 정부가 제정한 최저임금은 하루 8시간 근무에 3.55달러(약 4000원)로 책정되어 있다. 봉제공장은 가장 대표적인 최저임금 적용 직종 가운데 하나다. 즉 한달 25일 근무를 할 경우 90달러(약 10만 9260원) 정도를 받는다는 얘기고, 각종 야근과 특근을 채워도 최대 150달러(18만 2100원)에 머문다는 얘기다. 이는 노동력이 비교적 충분한, 같은 아세안 소속 인도네시아(최저임금 약 월 250달러-약 30만 3500원)와 비교해도 1/3 수준에 그치는 수준으로 현재 미얀마의 경제상황을 잘 대변하는 수치로 거론된다.

 

그런데 이같이 미얀마의 경제를 유지하는 섬유 및 봉제 산업이 최근 코로나 사태로 중차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2. 원자재 수급에서 시작, 이제는 노동문제로
 
중국과 국경을 접한 미얀마는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큰 타격을 입어야 했다. 우선 주로 육로를 통해서 중국 윈난성으로부터 들어오는 섬유 원부자재들의 수급이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덕분에 북부 만달레이의 상당수 공장이 휴업과 폐업에 나서야 했고 그 영향이 남쪽인 양곤에도 미치는 중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단순히 원자재 수급의 문제만은 아니게 됐다. 

 

 

첫째는, 미국와 유럽 등 의류완제품의 최대 수요처가 바이러스가 몰고온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수요가 급감한 것.


둘째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밀집해서 일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오는 바이러스의 감염 위협.


셋째는, 이런 위기를 틈타 주로 노조원을 대상으로 해고와 감원을 진행하면서 불거지는 심각한 수준의 노사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의 파장은 미얀마와 같은 저개발 국가에게는 보다 더 크고 깊숙하게 미치는 법이다. 이런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산업이 다름아닌 봉제업이 될 수밖에 없다.

 

우선 전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인 ‘자라’ 나 ‘망고’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저렴한 옷값을 만회하기 위해 미얀마나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를 주로 생산공장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유럽과 미국인들의 이동이 통제되고 수요가 크게 감소하면서 주문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이미 미얀마에서도 100여개의 공장이 폐업하거나 장기휴업에 돌입해 2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갑작스레 직업을 잃은 실정이다.

 

봉제공장의 열악한 노동조건도 문제가 된다. 보통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좁은 공간에서 생산활동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탓에 바이러스 전염의 온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미얀마 정부도 이번 ‘띤쟌 휴가 기간 (4월 10~16일)’을 통해 당분간 생산활동 중단을 요청하고 나섰다.

 

그런데 수익이 줄어든 업체들은 “무급휴가”를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노동자들은 “유급휴가”를 주장해 갈등이 커진 상황이다. 다른 수입이 없는 임노동자의 경우 무급휴가가 지속될 경우 생존권에 큰 위협을 받을 뿐만 아니라, 별다른 사회복지 대책도 전무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일부 업체들이 선보인 강압적인 방법의 인력 감축 정책이다. 주로 노동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이번 기회를 계기로 강제적인 해고를 반복하고 있기에, 미얀마의 노동단체들이나 인권단체들이 여러 해외업체들에게 크게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3월 중순부터 약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이같은 불법해고에 나선 사업주들을 상대로 연대투쟁으로 맞서고 있어, 이미 미얀마의  중대한 사회문제로 불거진 상황이다. 

 

그러나 미얀마 노동자들의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불만은 수용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가장 큰 원인은 최근 기록적으로 미얀마 화폐(짯)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어 해외투자업체들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초만 해도 1달러에 1520짯에 달하는 환율이 급락해 1달러에 1400짯 대가 붕괴하면서 실제 폐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3. 정부의 강력한 코로나 대처...연말 총선에도 영향 미칠 것 

 

미얀마는 현재 21명의 확진자와 1명의 코로나바이러스 피해를 입었을 뿐이지만 내부적으로 느끼는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감은 여느 선진국들과 큰 차이가 없다. 진단키트의 부족과 만성적인 공공의료 부문의 취약함을 정부와 국민들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미얀마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3월 말부터 시내 대부분의 식당의 손님접객을 금지시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중행사도 전면 중단시켰다. 미얀마 달력으로 새해격인 띤쟌 축제 역시도 철저하게 사람이 길거리에 나다니지 않는 전면적인 통제하레 조용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미얀마가 전세계적인 바이러스 확산으로 입을 피해 역시 적지 않을 전망이어서, 과연 아웅산 수치 정부가 이같은 충격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올해 말에 치러질 총선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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