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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緬甸 통신<12> '포스트 수치' 미얀마 차세대 리더는 누구?

수치 여사 이후가 걱정되는 NLD와 이미지 회복 노리는 군부...수치 '삼중고' 고민

미얀마의 정치체제는 한국과 비슷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지만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연방제 성격도 일부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이나 중국과 흡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대통령을 국민이 아닌 의회에서 간접 선출하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라고 해도 무방한 게 현실이다. 종합적으로 여러 나라의 정치 시스템을 적절하게 섞어놓은 절충형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미얀마의 정치권력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에게 집중되어 있다. 2015년 선거에서 대승한 집권여당 NLD(민주주의 민족동맹)의 지도자인 수치 여사는 외교부-대통령실-교육부 및 에너지부 장관을 겸직하며 ‘스테이트 카운슬러’ (국가고문)이란 직책으로 사실상 내각과 행정부를 장악하고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로 활약 중이다. 

 

 

1. 미얀마 민주세력의 고민

 

수치 여사의 권력이 얼마나 확고한 지는 2016년 이후 미얀마의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됐는지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NLD의 첫 대통령은 띤 쩌(74)로 아웅산 수치의 비서를 지냈던 측근 출신이었다.  2년 뒤 교체된 현재의 윈 민 대통령(71)은 직전 하원의장이었다. 오랜 기간 수치 여사와 정치를 함께 한 동지이자 충실한 지지자로 알려졌다. 물론 이 두 대통령을 결정한 것은 수치 여사 본인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최악의 전염병 위기 속에서도 미얀마 정치권은 11월로 다가온 총선 준비로 한창이다. 2008년 개헌과 함께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총선은 현재의 미얀마 정치구조를 결정짓는 가장 큰 이벤트다. 2015년 선거에서 압승한 NLD와 민주계는 상하원 모두 대략 60% 남짓한 의석을 갖고 있으며, 군부계 보수정당과 군부가 지명한 임명직 국회의원들이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집권 1기를 마무리 짓는 2020년 11월 선거에서 현 집권당인 NLD가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NLD와 수치 여사의 권력 구조는 탄탄하다.

 

그러나 이런 집권 NLD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45년 생인 수치 여사는 올해 75세, 집권 2기가 끝나는 2025년에는 여든 살의 노정객이 된다. 사실상 연말에 치러질 총선은 수치 여사의 지도력이 결정하는 마지막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마땅히 수치 여사를 대체할 정치적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전세계가 미얀마의 실질적인 지도자를 아웅산 수치 여사로 인식하고 있지만, 대통령의 위치가 아닌 국가고문의 위치에서 국가를 이끌고 있는 현실은 사실은 위헌에 가까운 상황이다. 의회에서 지위가 압도적인 현재는 문제가 안되지만 과반수가 조금이라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할 경우 집권 NLD와 수치 여사의 정치권력이 순식간에 무너질 가능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위기를 감지하고 있는 민주진영은 신속하게 수치 여사를 대통령으로 옹립하고 차세대 정치지도자를 키워내고 싶지만 군부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현재 2008년 헌법 구조상 외국인 남편과 자녀를 가진 수치 여사가 대통령에 취임할 가능성은 없다. 헌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임명직 국회의원이 1/4을 차지한 의회에서 이 같은 결정은 당분간 불가능한 게 현실. 이 같은 기형적인 상황 때문에 수치 여사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행정부와 의회에서의 독점적 권력을 포기할 의사가 없어 보이고, 자연스레 차세대 정치지도자 육성의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권력에서 물러날 뜻이 없는 군부 

 

현재 미얀마에서 권력을 가진 인물은 앞서 언급한 윈 틴 대통령과 티 쿤 먓 하원의장, 그리고 군부를 이끌고 있는 민 아웅 흘라잉 상급대장(64) 정도가 언급된다.

 

보수계열의 수장인 민아웅 흘라잉을 제외하곤 민주계열에서는 뚜렷하게 대중적인 지지도를 가진 차정치인은 수치 여사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미얀마의 민주계열이 세대교체에 실패한 이유는 수치 여사가 2010년 무렵까지 가택연금을 당할 정도로 군부독재가 장기간 독재가 이어진 탓이 크다.

 

군부의 탄압이 너무 거셌기 때문에 민주계열은 아웅산 수치를 중심으로 일종의 종교적 결사체와 같이 비밀스럽게 움직여야 했고, 특히 세대교체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미얀마의 386격인 1988년 8월 시위의 주역들이 정치권에 안착하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아웅산 수치 여사 주위에는 그녀와 세대와 엇비슷한 올드제너레이션들만 남게 됐던 것이다.

   

 

때문에 실질적으로 미얀마 정국의 2인자를 꼽자면 군부의 지도자인 민 아웅 흘라잉이 첫손에 꼽힐 수밖에 없다. 군부정치가 2015년까지 지속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당연한 현상이다.

 

현재도 미얀마 군부는 국방부 장관 이하 모든 고위군인사와 예산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서열과 기수로 결정되는 군부 최고위층이 의회의 1/4을 지휘하고 있기도 하다.

 

즉, 아웅산 수치 여사가 군대의 작전과 인사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군부와 연관된 관료와 기업인들의 수도 엄청나서 이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나라를 운영하며 쌓은 경험과 경제력이 민주계열 인사들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특히 민아웅흘라잉은 최근 수년간 온건한 이미지로 미얀마 국민에게 달라진 군부의 모습을 선보이는 중이다. 

 

이런 막강한 군부를 현재 대표하는 인물이 민 아웅 흘라잉이다. 대중적 인기와 지명도도 만만치 않아 언론에서는 “언제든지 대권을 꿈꿀 수 있는 인물”로 그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만일 민주계열이 아웅산 수치 이후의 차세대 정치인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언제든지 군복을 벗은 그가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최근 서구권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변신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미얀마 내 소수민족인 로힝쟈 족에 대한 군부의 탄압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치 여사 옹호자들은 그녀의 보수적인 행보를 놓고 “군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심모원려한 행동”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만일 수치 여사가 적극적으로 인권과 민주화라는 서구의 가치를 따르는 행동을 보였다면 군부가 미얀마의 민주주의 이행에 타협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이다.

 

그 이유와 배경이 어찌되었던 간에 내부적으로는 수치 이후의 미얀마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 아웅산 수치 여사는 전례없는 삼중고에 빠진 상황이 됐다. 밖으로는 서구권이 “변절”을 말하며 인권적 국정 운영을 주문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 압박”과 “자신을 넘어설 차세대 정치인 육성”에 대한 요구가 점차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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