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베트남관광청 대표부 개청,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다”
리 쓰엉 깐(한국명 이창근) 관광대사는 28일 주한 베트남관광청 대표부 개청을 앞두고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개청이 마치 계획적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가 베트남 관광대사로 임명된 것은 2017년 12월. 이후 1년 7개월만에 한국에 주한베트남관광청 대표부가 개청했다. 지난해 베트남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340만 명, 올해는 1분기에 30%가 넘어 5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개청식에는 응우엔 응옥 티엔(Nguyen Ngoc Thien) 베트남 문화체육부 장관도 참석한다. 한베수교 25주년을 기념해 리 쓰엉 깐 대사를 서울 롯데호텔에서 관광대사로 임명했던 바로 그 장관이다.
리 쓰엉 깐 관광대사는 “응우엔 응옥 티엔 장관은 나와 두 번씩이나 큰 인연을 맺은 분이다. 주한 베트남관광청 대표부 개청에도 만사 제치고 달려오셨다. 감격스럽다. 한국을 빛낸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도 개청식에 참석한다”고 말했다.
■ 언제나 베트남을 알릴 수 있는 관광청 한국 대표와 ‘관광대사’ 겸임
주한 베트남관광청 대표부는 관광청 산하다. 그를 관광대사로 임명한 정부부처가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다. 관광청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있으니 임명 자체가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는 관광대사로 임명되었지만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명예직이었다. 그는 베트남과 한국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관광청이 있어야 한다”고 베트남 정부에 설립 요청을 했다.
“단발 이벤트가 아닌 수시로 베트남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한국에 진출하고 싶은 기업과 베트남에 투자하고 싶은 지자체 교류 등 상시 기능을 갖춘 청을 설립을 요청했다.”
베트남 정부도 대표를 민간인으로 임명하는 데는 부담스러워했다. 공무원을 파견해려도 당장 예산이 필요했다. 이미 관광대사가 있다 보니 그를 ‘자연스레’ 선택했다. 물론 국가명예를 대표하는 자리니 꼼꼼한 심의 과정도 있었다. 여론조사를 거쳤고, 범법 사실 등 경력 조회를 하고 무려 12개 심의기관을 거쳐 임명했다.
주한 베트남관광청 대표부는 광진구의 7호선 어린이대공원 전철역 인근 큰길 버스정류장 앞 건물에 개청했다. 그는 “컨셉은 찾아가는 관광청, 시민들과 함께 하는 관광청이다. 한국인들과 베트남이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관광총본부다. 누구나 찾아오면 ‘커피는 공짜’다”라고 말했다.
■ 한양대-건국대-세종대 등 광진구에 3개 대학 소재 ‘젊은이 거리’ 북적
주한 베트남 관광청 대표부 개청식은 6월 28일 오전 11시 서울 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그렇다면 왜 하필 광진구일까. 리 쓰엉 깐 관광대사에 물었다.
그는 “광진구에는 한양대, 건국대, 세종대 등 3개 대학이 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젊은이들의 왕래도 많다. 제가 마포에 사는데 이번에 집을 옮기려는데 집값이 30%나 높더라.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고 핫한 지역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자유화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지구촌 여행에 관심이 많다. 트렌드에 민감하다. 베트남에도 관심이 많다. 관광청을 버스정류장 앞 건물을 선택한 것도 더 친근해지고 싶어서다. 가령 관광청이 4대문 안 고층 빌딩에 있으면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올까”고 덧붙였다.
관광청의 주임무인 ‘투어’는 단순히 언어 차원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경험, 이해가 동반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제대로 알고 이해를 하면 ‘관광’을 넘어 ‘여행’으로 이어진다.
쓰엉 깐 관광대사는 “시민들과 직접 만나는 행사를 늘려나가겠다. 개청식 이후 광진구와 ‘베트남거리’를 조성하기로 협의중이다. 음식과 인테리어로 특색적인 골목을 만들어 문화를 소개할 생각이다. 관광청도 개청 행사로 대학로에서 베트남 전통공연을 한다. 앞으로 관광청은 베트남 상설공연단을 꾸밀 생각이다. 또한 기업인과 단체 교류를 적극 지원하는 등 ‘관광청’이 실질적으로 베트남관광 한국 총본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개청식 행사에는 응우엔 응옥 티엔 베트남 문화체육부 장관을 비롯한 응우엔 부뚜(Nguyên Vu Tu) 주한 베트남 대사, 베트남 관광청 부청장 등 베트남 주요 인사가 참석한다. 한국에서는 북방 정책위원장인 송영길 국회의원, 한-아세안센터 이혁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다.
■ “저는 베트남 ‘이 왕조’ 31대손...관광대사가 되는 것 자체가 드라마 같다”
리 쓰엉 깐 대사는 이중 국적이다. 한국인으로 ‘유일한’ 베트남 정부에서 국적을 부여한 인물이다. 이유가 있다. 그는 지금의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도읍지로 정한 베트남 ‘이 왕조(Ly Thai To)’의 이용상(李龍祥) 왕자의 31대 손이기 때문이다.
이용상 왕자는 몽골이 고려에 침입하자 군사 지략으로 큰 공을 세워 화산군으로 봉해졌다. ‘화산 이씨’의 탄생이었다. 왕자는 평생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해 ‘월성암’이라는 바위에 올라 통곡하곤 했다. 2000년 기준 한국에 현재 230여 가구, 1775명이 살고 있다.
2010년도 베트남 국적을 부여받은 리 쓰엉 깐 대사는 2017년 11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3년 임기의 관광대사로 임명받은 바 있다.
“이용상 중시조 조부는 13세기 외가의 박해를 피해 한국(고려)으로 망명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유래한 한국의 성씨로 화산 이씨(花山 李氏)가 되었다. 중시조는 조국을 그리워했지만 돌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재 수교가 되면서 마치 ‘기적처럼’ 베트남으로 돌아가 국적을 회복했다.”
그는 “중시조가 언젠가 당신을 대신해 후손이 베트남을 찾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도 언젠가 후손이 돌아올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전설을 제가 이뤘다. 제가 돌아간 것은 그분의 ‘혼’이 돌아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적 같은 한편의 역사 대하드라마다. 1000여년(769년) 세월을 넘어 이용상 중시조는 리 쓰엉 깐 대사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역사적-혈연적 관계로 만들어주었다.
■ 베트남어-한국어-영어 잘하는 3남매 “아빠 이어 한국-베트남 가교될 것 기대”
꿈에서도 그리워한 ‘이용상 왕자’의 귀환의 염원을 이뤄낸 이후 그는 26년간 베트남에서 여러 분야에서 ‘민간사절’로 맹활약했다. 특히 그가 베트남행을 할 때와 비교해 한국-베트남 관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리 쓰엉 깐 대사는 스스로 “1992년 재수교가 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 국적을 회복한 이후 26년간 베트남에 거주하면서 ‘화산 이씨’의 31대손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 큰 성공은 못했지만, 제 인생에 대해 감사한다. 그리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베트남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획득했다.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를 ‘가장 오래된 해외동포’로 칭하고 있다. 그의 한베를 위한 노력은 과연 2세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2세들은 하나같이 베트남어와 한국어, 영어를 잘 한다. 특히 둘째는 통역도 자유자재다.
그는 “큰 딸(30)은 베트남 학교를 다닌 후 미국에서 치과의사가 되었다. 둘째인 아들(28)은 한국에서 병역의무를 마치고 시애틀에서 국제학 석사를 땄다. 셋째(23)는 중앙대 디자인과로 역시 한국 군대에 입대해 GOP에서 군 생활을 했다”고 자식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자식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한 리 쓰엉 깐 대사는 “평생 한베 수교에서 민간사절로 최선을 다했다. 여러 가지 장애물을 넘어오면서 가장 잘 알고 있다. 아이들도 아빠의 길을 잘 안다. 저도 내심 아이들이 내 길을 이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