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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근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 “리 왕조 31대손이에요”

대사 임명 첫 행사 한베콘텐츠협회 참석...관광청 개원 등 강남구청 등 협력 공개

 

“베트남에서 가장 가고 싶은 나라는 한국이다.”

 

이창근 주한 베트남관광청 대표부의 베트남 관광대사가 첫 나들이를 했다. 취임 첫 행사로 한국의 ‘한베콘텐츠협회’의 정기 모임 ‘하이! 베트남’을 선택한 것.

 

그는 2월 13일 오후 6시 2호선 지하철 강남역 인근에서 열린 ‘하이! 베트남’ 정기 모임에 참석했다. 그는 “관광의 기본은 여행이다. 하지만 굳이 여행이라고 칭하지 않지만 워크숍-업계 교류, 비즈니스, 졸업여행 등 다양한 특수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과 베트남 관광객은 연 340만 명이다. 그 중 다낭만 120만 명이다. 이창근 대사는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와 하노이의 남뜨니엠과 자매결연을 추진 중이다. 압구정동에 베트남거리가 생길 것 같다”로 말했다.

 

이창근 대사는 ‘화산 이씨(花山 李氏)’다. 베트남에서 유래한 한국의 성씨로 13세기 외가의 박해를 피해 한국(고려)으로 망명한 베트남 리(Ly) 왕조 이용상(李龍祥) 왕자의 31세손이다.

 

이 대사는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재 수교가 되면서 마치 '기적처럼' 베트남으로 돌아가 국적을 회복했다.

 

■ “저는 베트남 이용상 왕자이자 31대손 한국 ‘화산 이씨’다”

 

이창근 대사는 베트남에서 유일한 ‘이중국적’ 소유자다. 2017년 11월 24일 베트남 관광대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한국의 화산 이씨로 비(非)중국계 귀화 성씨다. 2000년 기준 한국에 현재 230여 가구, 1775명이 살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독자들을 위해 ‘화산 이씨’의 뿌리와 그의 관광대사 임명과의 연관성을 물어보았다. 역시 '화산 이씨'의 스토리는 웅장한 역사 대하드라마 같았다.

 

이 대사는 “시조는 베트남 리 왕조(이조)의 개국황제인 이태조 이공온이다. 중시조는 이용상이다. 6대 황제 영종 이천조의 일곱 번째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용상 할아버지의 31손인 제가 ‘관광대사’가 된 자체가 감격적”라고 했다.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 취임해 첫 공개 행사인 이날 자리에서 1000여년 전 ‘화산 이씨’의 조상부터 회상하고 눈물을 훔친 것은 당연했다. 리 왕조는 베트남 역사 가장 오랫동안 존속하면서 중국 침략을 물리치고 경제-문화-예술-건축-조각 등 여러 분야에서 큰 발달을 이뤄낸 왕조다.

 

하지만 7대 왕이 후사가 없고, 공주가 8대왕이 올랐지만 사위인 전씨 일족이 6대 왕조 혈족을 살육이 시작했다. 이용상 왕자도 중국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뜻밖의 풍랑을 만나 표류한 곳이 현재 황해도 옹진현 창진도였다.

 

고려 고종은 대월국의 왕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고려인과 결혼한 이용상 왕자는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얻었다. 이렇게 고려 고종 때 망명한 이용상 왕자는 몽골이 고려에 침입하자 군사 지략으로 큰 공을 세워 화산군으로 봉해졌다. ‘화산 이씨’의 탄생이었다.

 

왕자는 평생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해 ‘월성암’이라는 바위에 올라 통곡하곤 했다. 이 대목에서 이 대사는 목이 메었고 ‘눈물 많은 남자’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돌아보면 1000여년 세월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용상 왕자의 염원은 1992년 한국과 베트남 재수교가 되어 이뤄졌다. 그리고 역사적-혈연적 관계로 업그레이드했다.

 

이 대사는 “할아버지는 왕족의 몸으로 타국에서 여생을 보내며 ‘먼 훗날 나의 후손이 나를 대신하여 꿈에도 그리는 조국을 찾으라’고 염원을 남겼다. 이용상 왕자의 염원은 그가 769년만에 귀향해 이뤄졌다. 소중한 1000년 인연은 한국과 베트남의 미래를 여는 귀중한 열쇠가 될 것”이라며 다시 눈가에 눈물을 비쳤다.

 

 

 

■ “32세 때 직장 때려치우고 베트남행, 이제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로 돌아왔다”

 

이 대사는 1992년 12월 22일 한국과 베트남 재수교를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는 이용상 왕자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고국(베트남)을 찾았다. 나이 32세(그는 58년 개띠)였다.

 

"주위에서는 말렸다. 종손이었던 작은 아버지의 한베문화교류협회-한월친선협회 등 활동 자료를 가져가니 깜짝 놀랐다. 물론 대사님이 알고 있었다.”

 

이후 화산 이씨 종친회에서 1995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도무오이 당서기장을 비롯한 베트남의 지도급 인사들이 이들을 환대했다. 그리고 베트남인과 동등한 법적 대우 및 왕손 인정 등의 호의를 베풀었다.

 

[관광대사 취임 축하 케이크를 커팅하는 전충헌 회장과 이창근 대사(오른쪽). 사진=아세안익스프레스]

 

베트남 정부는 해마다 리 왕조가 출범한 음력 3월 15일이면, 종친회장을 비롯한 종친회 간부들을 기념식에 초청하여 행사를 진행한다. 2002년 12월 베트남의 하노이 오페라 극장에서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된 이용상 왕자의 일대기를 공연했다.

 

꿈에서도 그리워한 ‘이용상 왕자’의 귀환의 염원을 이뤄낸 이후 그는 25년간 베트남에서 여러 분야에서 ‘민간사절’로 맹활약했다.

 

“저는 베트남에서 유일한 ‘이중국적자’다. 한베의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1992년 재수교가 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 국적을 회복했다. 이후 25년간 베트남에 거주하며서 ‘화산 이씨’의 31대손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든든한 가교를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가 베트남행을 할 때와 비교해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2010년 베트남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획득했다.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를 ‘가장 오래된 해외동포’로 칭한다.

 

베트남은 2017년 그를 관광대사에 임명했다. 한국 관광객은 물론 세계 각국을 상대로 베트남 관광자원을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월 30일 베트남 관광총국과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는 주한 베트남 관광청 대표부 설립 승인 협약식을 가졌다. 이 대사는 주한 베트남 관광청 대표부 대표로 임명되었다.

 

 

그는 “한 해 한베 관광객이 340만 명이다. 다낭에만 120만명이고, 하루 13대 한국-베트남간 비행기가 뜬다. 다 만석이다. 손님을 앉아서 맞는 것은 말이 안된다. 관광청을 설립해야 한다는 어필이 받아들여져 기쁘다”고 말했다.

 

2004년 베트남 정부는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한국 포함 7개국을 '노비자'를 선언했다.

 

물론 그는 “나는 공무원은 아니다. 준 공무원이다. 하지만 관광대사로 28개국 프리패스다. 베트남 법 상 가이드업은 외국인이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다낭 정부와 한국인 불법가이드를 양성화를 이뤄냈다. 2012년 45명 가이드 면허를 타냈다. 한베 수교 처음”이라고 남다른 노력도 소개했다.

 

■ “4월 주한 베트남 관광청 ‘강남스타일’ 본산 강남구에 개청 유력”

 

주한 베트남 관광청 대사인 이 대사가 첫 참여한 공식 자리는 ‘한베콘텐츠협회(회장 전충헌)’ 정기 모임이었다. ‘한류’ 등 콘텐츠 전문가인 전충헌 회장이 초대했다.

 

오는 4월 개청을 둔 베트남관광청에 대한 준비도 잰걸음이다. 베트남관광청으로 물망에 오른 유력지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고, 싸이 <강남스타일>로 대표되는 한류의 본산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다.

 

이 대사의 여행철학은 실용적이다. 명쾌했다. “여행은 단순히 여행뿐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특수한 교류도 여행이다. 가령 워크숍, 은행업 등 업계 교류, 전문성이 있는 협회간 만남, 졸업여행, 비즈니스 교류 등 딱히 여행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되는 인적교류 특수 목적도 여행이다.”

 

이런 회원간 비즈니스 교류 등 ‘특수목적’도 여행이다. 가령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한류’체험과 쇼핑을 하면서 더 깊어진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버스를 타고 차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과 같이 거리를 걷고 시장에서 '그곳'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

 

현재 강남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베트남거리를 조성하고, 강남구는 베트남 하노이 ‘남뜨니엠’랑 자매결연을 추진 중이다. 조만간 이에 대한 설명회를 가진다. 관광분야에서 한베가 새로운 장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다.

 

 

이 대사는 “25년간 베트남에서 생활했다. 그동안 좋았다, 싫었다, 살렸다, 죽였다. 애증이 쌓여 애정이 되었다”며 “전충헌 회장의 열정과 콘텐츠에 대한 안목에 감동했다. 강남구에 관광청이 생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웃었다.

 

“관광청은 여행에다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한다. 베트남 갔다온 사람, 호기심이 있는 사람,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꼼꼼히 준비하겠다. 맛과 볼거리, 살거리 등 베트남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한베가 영원히 동행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로 만들고 싶다.”

 

■ “한베는 ‘아인-엠’(형제)다...2~3년 전부터 유난히 더 뜨거워졌다.”

 

이 대사는 30년 가까이 베트남에서 살았다. 그는 “수교 재개 이후 지금 분위기가 가장 핫하다. 그동안 외교단절, 자존심 싸움 등 험한 위기도 있었지만 2~3년 전부터 유난히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그가 분석한 핫한 이유는 “역대 대통령이 한베를 중시해왔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지리적인 요충이자 유교문화와 한류 등 정서가 통하는 면에다 '포스트 중국'으로 대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옮겨오면서 특히 주목을 받은 것 같다. 대기업을 진출하면 아래 협력사들이 같이 오니까 말이다.”

 

여기에다 “베트남은 국기 스포츠가 축구다. 박항서 감독이 계속 승리하는 ‘매직’을 펼쳐 젊은이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아인-엠’(형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장 응원을 해본 사람으로 감격스럽다. 지금까지는 젊은이 중심으로 한류에 열광했다. 이제는 범국가적인 한류다. 말 그대로 한베는 형제다.”

 

베트남 젊은이들도 ‘끼가 많다’. 한국의 패션과 K-POP(한국 음악), 드라마 등을 좋아한다. 물론 호기심으로만 관심을 가지면 한두 번 좋아하다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포기할 것이다. 진정 이해해야 더 가까워져야 한다. 더 이해가 깊어져야 한다.

 

그는 “한국인은 정이 많다. 그렇지만 베트남이 아직 경제적으로 1인당 GNP 3000만달러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배려해주고 이해해주고 줄 것이 있으면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신뢰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이나 미국으로 간다. 우호를 넓혀야 한다”고 충고 아닌 충고했다.

 

 

■ “관광대사 강추 베트남 관광은 다낭-사파 소수민족 마을-하롱베이”

 

그는 한베의 인연은 ‘필연관계’로 설명했다. 이 때문에 “잊지 말아야 할 것도 꼭 알아야 한다. 역사적인 관계도 알아야 한다. 배경을 알고 있고 과거 사연을 알게 되면 더 친해진다”고 강조했다.

 

이 관광대사에게 기자를 위한 ‘베트남 관광’ 팁을 하나 부탁했다. 아닌 처음 베트남을 접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지를 요청했다.

 

“베트남은 나라가 길고 지역이 다양해 관광상품 콘텐츠가 많다. 어디 가서도 대만족이다. 풍경도 한국의 시골 풍경처럼 향수를 부른다. 한국인들에게는 옛날 생각을 나게 한다. 모두 한국인들을 환영한다. 요즘 테마여행이 인기다. 시골 민가에서 잠을 자보고 생활해보면 좋다. 베트남 사람들은 온순하다. 개인 투어를 해도 위험이 없고 친절하다.”

 

역시 관광대사답다. 이렇게 말머리를 열고 나서 다낭과 사파 소수민족 마을과 하롱베이를 추천했다.

 

그는 “다낭은 산과 바다와 강이 어우러졌다. 자연생태계가 잘 보호되어 있어 자연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중국 국경 접경의 소수민족이 사는 '사파'지역도 좋다. 겨울에 가끔 눈이 오는 3000고지다. 하롱베이는 더 설명을 할 필요없다. 유네스코 지정 인류문화유산으로 너무 아름답다.”

 

■ “관광객 유치보다 중요한 것은 발전 기금 등 시스템 만드는 것이 중요”

 

지난해 베트남인이 한국을 찾은 인구가 40만명이다. 이 대사는 머지 않아 100만명이 될 것이라고 대비를 하고 있다.

 

“관광청 개청을 앞두고 한베 양쪽 관광객을 위한 편리성-경제성-안정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꼼꼼히 점검 중이다. 하지만 관광객수가 늘어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관광객 유치도 중요하지만 베트남 관광발전을 위한 기금 확보 등 시스템에 연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는 3월이면 개청 준비와 함께 매년 하는 대전-대구-광주-부산 순회 설명회 이벤트를 위해 분주하다. “올해는 이 행사가 관광청 개청과 맞물려 있다. 설레고 즐겁지만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서울에 태어난 이 대사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 하노이로 갔다. 이제 큰 딸은 미국에서 치과의사가 되었다. 둘째 아들은 베트남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서 석사를 땄다. 막내 아들은 중앙대학교 2학년이다.

 

이 대사는 “두 아들이 모두 베트남 국적이지만 한국 군대를 보냈다. 베트남에서만 자라서 한국을 너무 몰랐다. 종로도 동대문도 몰랐다. 논산훈련소를 가면서 시골길을 걸으면서 ‘살아돌아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말할 정도였다"고 소개하며 웃었다.

 

769년만에 조상의 땅 베트남 귀향하고 25년만에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화산 이씨 왕족 이창근 대사. 그는 이제 1000년 전 맺은 할아버지 이용상 왕자의 '인연'과 염원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미래를 푸는 새로운 '키맨'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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