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과 약소국의 의미는 물론이고 빈부의 격차와 지식의 유무조차도 불과 0.1μm(미크론) 크기의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속수무책했다. 전 세계가 그토록 자랑하던 과학문명의 이기들도 코로나19 창궐 앞에서는 한낱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기원전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인간이 행해 온 손 씻기와 마스크 쓰기가 유일한 감염방지 대처 수단이었다. 이런 원초적이지만 근원적인 해법마저 무시하고 방임했던 전 세계 최고 부강 국가의 지도자는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소위 ‘천조국(천조국(千兆國-국방예산이 천조원인 나라)' 혹은 '천자국(天子國-천자가 다스리는 나라)'으로 불리는 나라, 미국에서는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군 전사자 수를 합한 것보다도 많은 16만 명이 넘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자가 발생했다.
태국 인구는 6900만 명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약 5배가 넘은 3억 5000만 명이다. 코로나19 사망자만 비교하면 미국 16만명, 태국은 58명이다. 확진자 수는 태국이 3300여명, 미국은 500만명을 넘어 태국의 1500배에 달하고 있다.
미국은 생존률이 희박한 난치병과 희귀병조차도 재력있는 사람이면 구난받을 수 있다는 첨단의료 선진국이자 세계 제일의 부자나라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서는 마스크와 산소호흡기 같은 기초 방역품을 제3국으로부터의 공급에 의존했을 정도로 사상 초유의 공중보건 위기를 맞았다.
이에 비해 태국이나 한국 같은 절대 다수의 공리를 추구하는 공공의료적 건강보험 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들은 미국 같은 초 강대국을 능가하는 현실적인 방역 모범체계를 보여주었다.
태국에서는 싼값에 마스크를 구입해 언제 어디서나 착용할 수 있다.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마다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소독용 알코올 젤을 공공장소 곳곳에 비치해 놓았다. 그 누구 하나 그것을 훔쳐가지 않았다.
이러한 태국의 코로나19 풍속도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사태 와중에 국가 공권력에 의한 유색인종 차별에 반발하는 시위가 폭동으로 번져 준전시 상태와 같은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세계적 역사학자 ‘유발 하리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인간이 35만 년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 동안 세상을 지배하게 된 배경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인지 혁명을 통한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으로 집단 간의 협력이 가능해짐과 동시에 자연을 길들여 제국을 출현시키고 교역망을 확대했다. 돈이나 종교 같은 상상의 질서를 낳았으며, 과학이라는 위험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되었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의 물적 생산 확대와 제국주의적 글로벌화,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확대를 통한 환경파괴를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반문케 되는 것이 있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다 보니, 정작 필요한 것을 제대로 소유하는 균형 있는 삶을 놓친 것은 아닌지, 필요치 않는 것까지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려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자성 말이다.
비단 어느 특정 집단이나 사회계층에 대한 비난성 경구를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삶에 적용되는 소위 ‘미니멀리즘’ 논리를 말하려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진정한 자신의 삶에 유익한 것을, 필요한 부분만큼 소유하자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미니멀 라이프', 단순화할수록 중요한 부분에 집중이 가능하다. 소중한 것에 집중키 위해서는 적게 소유하더라도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남과 비교하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해 보이기 위해 하나라도 더 소유하려는 삶보다 나은 삶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소중한 것을 위해 소중치 않은 것은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전에 없이 쾌청해진 방콕 하늘을 올려다보다 발견한 것이 있다. '미니멀리스트’의 삶이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보다 훨씬 가치 있을 것 같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헤쳐나가는 슬기로운 생활은 꼭 필요한 것만을 지니고 단순화시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 기간뿐이 아니라 일단락이 된 후에도 큰 경제 위기가 몰아친다는 예측들이 세간에 팽배해 있다.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의 분석이 눈길을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8년에 겪었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대로 수술치 않고 봉합해버린 상태에서 형편없이 약해지고 불균형해진 글로벌 경제를 코로나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총구 트리거(방아쇠)가 조준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의 공존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특징적 소구라는 협동적 사회성이 더욱 절실한 시절이다. 인간의 생활에 긴요한 생필품의 생산과 공급에 초점을 맞춰 이 전대미문에 가까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필자는 이런 시기에는 한국 사람들의 특징처럼 되어버린 빠르고 다이내믹하고 스파클링한 생활관습과 사고방식보다는, 태국인들의 편안한 마음가짐과 유연한 삶의 형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본다.
태국인들의 안분지족(쾀 퍼피 양 :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구함), 온정주의(남 짜이), 사양지심(끄랭짜이) 그리고 공유하려는 마음(첩뱅빤)을 담은 스피릿이 더 유효할 것 같다.
그들의 삶에 반영된 이러한 행동양식, 즉 ‘태국다움'이라는 뜻의 '타이니스(Thainess)'와 '베리 타이(Very Thai)’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그것이 꼭 느려 터지고 답답한 상황을 미화하는 말이라고만 볼 수는 없기에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갈 비즈니스 화두라는 ‘언택트(비접촉, 비대면, 온라인)’가 세상을 더욱 더 커다란 고독과 소외로 몰아넣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간절하다.
방콕=전창관 기자 bkkchun@aseanexpress.co.kr
전창관은?
18년간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세일즈 &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며 2회에 걸친 방콕현지 주재근무를 통해 가전과 무선통신 제품의 현지 마케팅을 총괄했다.
한국외대 태국어학과를 졸업 후, 태국 빤야피왓대학교 대학원에서 ‘태국의 신유통 리테일 마케팅’을 논문 주제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태국학회 해외자문으로 활동 중이다.
아세안의 관문국가인 태국의 바른 이해를 위한 진실 담긴 현지 발신 기사를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