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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관의 태국이야기5] '레드불'로 본 아시아 '각성제드링크' 연대기

레드불 창업 3세 음주·마약 뺑소니 의혹사건...레드불 & 립뽀...박카스 각성 효과 데자뷰

 

태국에서 만들어져 세계로 뻗어나간 각성제 에너지음료 ‘레드불(Red Bull, 태국어 명 '끄라팅댕)’의 창업 3세가 음주-마약 뺑소니 의혹사건을 저지르고도 결국 불기소 처리되자 태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레드불 창업주의 손자 오라윳 유위타야는 8년 전 방콕 시내서 페라리를 타고 과속해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치어 숨지게 했다.  과속, 뺑소니, 정차위반, 피해자 구제 위반 등 5가지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수사를 무려 8년간을 끌다가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의혹은 '까도 까도 나오는 의혹의 종합백과사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도  각성제 성분의 에너지 드링크로 세상을 각성(?)시킨 돈으로 만들어진 재벌 파워가 '태국판 유전무죄' 사건의 원흉이 되어 태국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태국 국민들이 즐겨 마시는 소위 자양강장 에너지 드링크류 중에는 이 '레드불' 외에 ‘립뽀(Lipovitan D)’라는 것도 있다. 한국의 ‘박카스 D’와 효능뿐 아니라 병 디자인이며 색상까지 너무 닮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어찌나 비슷한지 혹시 ‘박카스 D’를 모방해 만든 제품인가 했다. 알고 보니 일본 다이쇼우 제약의 ‘리보비탄D’의 태국 현지 생산품이었다. 한국 동아제약 박카스 D의 원조 역시 일본의 ‘리보비탄 D’가 그 원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70, 1980년대에 밤 잠 안자고 재봉틀 돌려가며 수출 입국의 의지를 불태우던 봉제공장 여공들의 손에는 박카스 D가 쥐어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박카스가 심야운행 총알택시 운전사의 손을 거쳐 밤 잠 안자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몰두하는 노량진 공시 준비생들에게까지 두루 음용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시아의 오룡(五龍)’으로 불리며 나름 경공업 기반을 닦아가던 태국에서는 일본의 리보비탄 D가 현지 생산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태국의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손에는 ‘립뽀’라는 이름의 각성제 음료가 들려있었다. 

 

70,80년대의 엔고를 피해 동남아 생산기지 진출을 시작한 일본의 현지기업에 고용된 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힘을 쥐어짜내는데 각성제 에너지 드링크가 악역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와 비슷한 역할을 자처하며 '레드불, M150, 가라바오' 같은 각양각색의 각성제 드링크 유사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처럼 각성제 에너지 음료에 과다량이 함유된 카페인의 힘이 한국에서 구로공단 노동자들을 각성(?)시켜 주는가 싶더니 이내 동남아 노동자들의 '공장의 불빛'이 되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 중에서도 이번 태국의 음료재벌 창업주 3세의 음주-마약 뺑소니 의혹사건을 야기했던 ‘레드불’의 판매고는 상상을 초월했다. 제조사인 TCP그룹은 레드불 바람을 타고 태국 10대 재벌회사로 등극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회사와 합병하여 태국어인 '끄라팅댕' 대신에 영문표기인 '레드불' 상표로 디자인을 변경한 새 옷을 갈아 입고는 카페인과 당분의 힘을 앞세워 수출시장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기까지 했다. 

 

탄산을 함유한 캔제품으로 오스트리아에서 변신한 레드불은 다시금 태국으로 역수입까지 되고 있다. 소위 “내일의 체력을 오늘 미리 대출받은 기분을 만들어 준다"는 이 드링크제가 전 세계 170여 개국에서 연간 75억 병이 넘게 팔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 일본에서 개발한 ‘리보비탄 D’의 카피캣(Copy Cat, 모방 제품) 논란이 일었던 박카스 D가 각성제 음료 한국시장을 석권했고, 캄보디아에서조차 연간 2억 병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캄보디아서 코카콜라보다 더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 드링크 음료가 되었다. 

 

캄보디아 국민들이 '에너지 드링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박카스를 한국에서 수입해 마시고 있는 이런 현상을 두고, '경제발전을 위한 각성제 음료 대물림 효과'라고 봐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70, 1980대 한국 경제부흥도 알고 보면 강력한 카페인 성분으로 각성(?)된 수많은 사람들의 잠 못 이룬 노고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 연대기의 주력제품인 전자제품 신화도 알고 보면 일본 제품을 복제한 카피캣이라는 오명을 쓰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밤잠 안자고 박카스를 마셔가며 개발과 생산에 노력한 결과일 수 있다.

 

졸린 눈 비벼가며 박카스를 마시며 일한 덕에 언젠가부터는 일본제품 카피캣 신세에서 벗어나 가전과 휴대폰 분야에서 전세계 톱을 달리는 '진짜 호랑이(Real Tiger)'로 군림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중세 서구사회에서는 봉건 영주들이 농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유럽 도처에서 포도 농사를 짓게 한 후, 그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밤낮없이 마셔댔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니까 유럽 각국의 상류층은 늘 포도주에서 덜 깨인 취기어린 상태로 밤에는 음탕한 생활이나 해대는 바람에 술이 덜깬 상태에서 중세 암흑기 내내 인류 문명의 제 분야가 침체 일로를 걸었다는 이야기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시기에 이르러 각성제의 대명사인 ‘커피’가 유럽에 유입되었다. '카페인'이라는 각성제 성분으로 말미암아 전 유럽이  취기에서 깨어나 중세와 근대를 이어주는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촉발케 되었다고 보는 어느 문화인류학자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다소 억지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와인의 알콜성분으로 주독에 찌들었던 중세의 서구가 커피의 주성분인 카페인에 각성되어 그 덕분에 근·현대산업사회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당시의 '커피에 의한 카페인 각성 효과’는, 어찌 보면 중세 암흑기에서 세상을 일깨워준 보배같은 존재였을 수도 있다.

 

일본 역시, 태평양 전쟁으로 폭망한 국가를 재건하겠다고 ‘리보비탄 D’의 각성제 효과를 십분 이용해 한국의 전후 재건과 베트남 전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고 수출함으로써 국부를 만들어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한국도 '리보비탄 D’를 카피하다시피한 ‘박카스 D’를 만들어 마셔가며 경제부흥을 이룬 측면이 있기도 하다. 이제는 그 뒤를 이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산업 부흥을 일구려는 태국인들의 손에 같은 효능을 가진 태국 현지 생산품 ‘립뽀와 레드불, M150, 가라바오' 등이 들려있다. 

 

그 뒤를 이어 캄보디아 국민들은 한국의 ‘박카스 D’를 받아 쥐고 경제부국의 꿈을 꾸고 있다. 일종의 각성제 에너지 음료를 통한 경제발전 이행 단계상의 데자뷰 현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전창관은?

 

18년간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세일즈 &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며 2회에 걸친 방콕현지 주재근무를 통해 가전과 무선통신 제품의 현지 마케팅을 총괄했다.

 

한국외대 태국어학과를 졸업 후, 태국 빤야피왓대학교 대학원에서 ‘태국의 신유통 리테일 마케팅’을 논문 주제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태국학회 해외자문으로 활동 중이다.

 

아세안의 관문국가인 태국의 바른 이해를 위한 진실 담긴 현지 발신 기사를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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